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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2019년 새해가 밝았다. 역사의 기운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꿈틀거리고 있어 가슴이 뜨겁다. 기운을 올라타고 역사의 주인공이 되느냐 아니면 또다시 타자(他者)의 역사에 비운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느냐는 애오라지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

2019년이 반세기 넘게 남·북한을 옥죄었던 질곡(桎梏)의 역사의 변곡점이 됐으면 하는 게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일 게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를 살려냈다.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의 기류를 시원스레 날려버렸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까지 놓았다. 한반도 평화의 핵심과제인 북한의 비핵화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이 또한 분단 시대의 편견과 낡은 관성적 사고를 털어낸다면 충분히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생긴다. 신념은 운명을 낳는다고 했다. 분단의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건 자명해졌다. 타자의 논리로 강요됐던 우리의 그릇된 역사를 바르게 돌려놓는 건 우리 겨레에게 주어진 정언명령(定言命令)이 아닐 수 없다.

본래 둘이 아니었기에 하나로 되는 건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요, 진리다. 바야흐로 도도한 새 물결에 몸을 싣고 날선 대결의식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다. 그렇다고 너무 조급증을 내서도 곤란하다. 분단의 세월이 반세기를 훌쩍 넘겼고 무엇보다 남과 북은 내전이라는 혹독한 역사를 경험한 탓인지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이질감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분단의 시대를 접고 통일 시대를 향한 전환의 길목에선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녹일 수 있는 훈풍이 필요하다. 전환시대에 가장 유용하고 효과적인 기제는 스포츠가 아닐까 싶다. 때마침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가 지닌 평화와 통합의 가치는 급부상했다. 그리스어로 ‘무기를 내려놓다’는 뜻의 ‘에케체이리아(ekecheiria)’ 정신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다시금 살아나 전 세계를 향해 그 의미와 가치를 웅변했다.

‘에케체이리아 정신’으로 대변되는 올림픽의 가치가 한반도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동서냉전의 고리를 끊은 1988 서울올림픽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의 디딤돌을 놓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까지. 그리스에서 태동한 올림픽이 한국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은 올림픽 역사와 운동에서 한국 스포츠의 위상을 한껏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남·북한은 한반도에 부는 훈풍을 놓칠세라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 개최를 선언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역시 남·북한 올림픽 공동 개최를 환영하는 눈치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올림픽을 공동 개최한다는 사실은 올림픽운동의 확산과 평화의 가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호재이기 때문이다.

갈등과 대립을 뛰어넘는 화합과 포용의 새 시대에서 남북교류는 필연적인 흐름이며 그 흐름의 선봉에는 누가 뭐래도 스포츠가 자리잡고 있는 모양새다. 스포츠의 남북교류는 다른 분야에 견줘 한결 풍부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교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장점마저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본질적 속성은 공감(共感) 능력이다. 공감이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일컫는다. 가슴으로 느끼는 공감은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고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을 갖는다. 스포츠가 분단이 잉태한 사회적 간극과 민족적 이질감을 해소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짜장 틀린 말이 아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하나된 감동이 새해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스포츠서울이 2019년을 맞이해 내건 울림있는 캐치프레이즈인 ‘원 코리아, 평화로 미래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분단과 갈등으로 얼룩졌던 한반도를 확 바꿨으면 좋겠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