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혹독한 실패 경험에도 파행이 되풀이된다면 그건 아마도 곡절(曲折)이 있을 것 같다. 여론을 우습게 여기는 리더의 오만함 때문이거나 아니면 여론을 무시하면서까지 추구해야할 구체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일 게다.
인사파행으로 전반기 2년을 허송한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가 후반기 2년을 책임질 인사를 최근 마무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인사도 낙제점이다. 이기흥 회장의 오만한 리더십과 체육회의 사유화라는 구체적인 목적이 빚은 결과라는 게 체육계 안팎의 공통된 견해다. 겉으로는 인사추천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공정한 인사를 단행했다고 체육회는 항변하겠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에 사사로움이 개입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절차적 정당성이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하면 오히려 힘 있는 자들의 그릇된 행동이나 잘못된 결정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곧잘 활용된다. 인사추천위원회를 바라보는 체육계의 시선이 곱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체육회가 인사추천위원회를 가동한 배경은 이미 내정된 인사와 염두에 뒀던 인사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썩 좋지 않았던 데 기인한다. 이들에 대한 인사가 여론의 공감을 얻기 힘들자 인사권자인 이 회장은 책임을 벗어나고자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고 인사추천위원회를 가동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이기흥호’의 남은 2년의 미래도 그다지 밝지 않다고 보는 이유는 앞선 인사 실패를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이너서클’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정실인사는 물론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던 종교적 편향성 역시도 고쳐지지 않았다. 어디 그 뿐인가. 체육회가 ‘관료들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된다는 체육계의 지엄한 지상명령을 어기며 사무총장 자리를 또다시 고위관료 출신으로 채우는 자충수까지 뒀다.
일부에선 “모든 걸 만족시키는 인사는 있을 수 없다”며 이 회장의 인사를 두둔하기도 했지만 이는 맥락적 흐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생뚱맞은 주장이다. 체육회의 이번 인사는 특별한 상황에서 단행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국회와 정부가 체육회의 인사난맥상이 위험수위에 처했다고 보고 강력한 쇄신을 요구해 이뤄진 조치다. 그런 인사가 이 지경이라면 기대는 난망이다. 이 회장의 리더십이 시대정신을 반영하거나 시민사회의 눈높이와 맞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터다. 그러나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인사 난맥상에 대한 쇄신안조차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 더 이상 그에게 한국 체육의 미래를 맡겨서는 안된다는 게 체육계의 중론이다.
인사과정에서 ‘조재범 사태’라는 핵폭탄이 터진 탓에 체육회는 여론의 매운 검증과 냉정한 평가를 비껴갈 수 있었다. 체육회의 이번 인사는 이 회장의 독불장군식 리더십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게도 거대담론에 묻혀 버렸다. 체육회 인사가 중요했던 이유는 이 문제가 향후 박차를 가해야할 체육개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체육개혁의 성공여부는 이번에 새롭게 수혈된 핵심인사들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측근을 챙기고 정치적 외풍을 잠재우는 인사의 영입이 과연 체육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이번 인사는 결국 체육개혁에 대한 이 회장의 박약한 의지와 철학의 부재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됐다. 체육회 사유화를 재확인한 인사 파행, 한국 체육에 울리는 회색빛 조종(弔鐘)소리가 구슬프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