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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애초에 염치(廉恥)란 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일찍 속내를 드러내는 카드를 빼들지는 몰랐다.
오히려 의도를 눈치챈 많은 체육인들이 짙은 배신감을 느꼈다면 그동안 검은 속내를 꽁꽁 숨겨둔 그 작전은 성공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보면 된다. 아니, 역풍이 불어 심각한 동티가 날지도 모르겠다.
오는 12월에 열리는 차기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지 않을까 의혹의 시선이 짙다. 이같은 의혹은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가 지난달 20일 전국 17개 시·도체육회에 보낸 공문에서 다시 한번 감지됐다.
‘지방체육회장 협의회 구성과 지원 안내’라는 공문 제목에서 보여지듯 대한체육회는 지방체육회장 선거를 통해 새롭게 개편된 지방체육을 조직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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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칼럼은 짐짓 반향이 뜨거웠다. 체육인들의 의사에 반해 민선 지방체육회장 선거를 강행했던 대한체육회의 숨은 의도를 논리적으로 캐냈기 때문이다. 체육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민선 지방체육회장 선거를 밀어붙였던 대한체육회의 검은 욕심이 결국에는 오는 12월 열리는 제 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와 맞닿아 있다는 필자의 논지에 많은 체육인들이 뒤늦게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체육인들이 느낀 감정이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감 같은 것이었다면 향후 대한체육회장 선거 판도는 심상치 않을 것 같다. 아직도 대다수 한국의 선거는 명분과 구도가 판세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베일에 싸여있던 대한체육회의 지방선거 강행 의도가 하나 둘씩 벗겨지자 지방체육회로부터 의미심장한 제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제보들 중 가장 흥미로운 게 바로 지방체육회의 조직화였다. 이 문제를 지난주 칼럼의 연장선상속에서 접근해보면 대한체육회가 이기흥 회장의 체육권력 유지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금세 눈치챌 수 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달 20일 전국 17개 시·도체육회에 공문을 보내 지방체육회의 조직화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모든 선거는 곧 조직의 싸움이다. 대한체육회는 민선 지방체육회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기 위해 조직화가 절실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래서 서둘러 운영비 지원과 함께 대한체육회 부회장 자리와 이사 자리 하나씩을 내걸고 러브콜을 던졌다.
대한체육회는 협의회를 3단계로 나눠 전국시·도체육회장협의회(17명)-전국시·군·구체육회장협의회(17명)-시도 시·군·구체육회장협의회(228명)로 각각 편재해 이들을 대한체육회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는 청사진을 그렸다. 그렇게 되면 대한체육회는 17개 광역자치단체 체육회는 물론 228개의 기초자치단체 체육회까지 장악해 향후 회장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겉으로는 지방체육회간 교류와 대한체육회와의 가교 역할을 위해 협의회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체육인은 별로 없다. 이 모두가 오는 12월 열리는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이기흥 회장의 연임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심산이라는 게 세간의 냉정한 시선이다.
지방체육 관계자는 “그동안 지방체육을 홀대했던 대한체육회가 이 회장의 연임을 위해 자꾸 꼼수를 부리고 있다”면서 “지방체육을 선거에 활용하기 보다는 지방체육의 자율성을 위해 실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대한체육회가 문화체육관광부를 상대로 임원의 승인권을 없애라고 해놓고선 지방체육과의 관계에선 ‘갑’의 입장으로 돌변해 임원 승인권을 고수하는 건 맞지 않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다른 지방체육 관계자도 “대한체육회가 정치화를 부추기는 지방체육회장 선거를 강행해서 꽤 놀랐다. 선거를 통해 지지세력의 외연을 넓히는 것도 모자라 지방체육을 조직화해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습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궁금증이 하나 둘씩 풀리고 있다. 모든 게 차기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맞닿아 있고,한국 체육을 이끄는 대한체육회가 이 회장의 연임에 체육행정의 모든 걸 집중시키고 있는 게 작금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IOC 위원은 스포츠외교력이 절실한 한국 체육계에선 분명 필요하고 중요한 자리다. 그러나 IOC 위원이 자리와 권위에 걸맞게 올곧은 철학을 바탕으로 한 통 큰 리더십을 펼치지 못하면 그건 다시 한 번 고민해볼 문제다. 자신의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IOC 위원은 대한민국 체육에 그다지 필요 없다는 게 체육인들의 공통된 견해니까 그렇다. 국민들은 더 하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