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게 정치라면 선동은 갈등을 조장하고 양산한다. 정치가 사라졌다. 정치가 사라진 그 자리에 선동이 난무하는 시대다. 역사를 꿰뚫어 보고 시대를 견인하는 정치 리더십이 더욱 필요해진 이유다. 그런 점에서 최근 경기도 남양주시의 특별한 실험 하나가 눈길을 잡아끌고 있다. 미래 세대의 주역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체육과 예술 교육. 현안이 산더미인데 “그게 뭐 그리 대수”라며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책의 깊이와 넓이는 생각보다 심오하고 광대하다.

유권자의 표심(票心)에만 몰두한 천박한 정치 리더십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교육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리더십이 절실해진 한국 사회에선 푯대로 삼을 만한 탁월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제대로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한 주인공은 주광덕(63) 남양주시장이다. 민선 8기 남양주 시장에 당선된 그는 ‘상상 이상의 남양주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토대이자 희망으로 미래세대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체육.예술 교육 정책카드를 뽑아들었다.

보편적 가치마저 부인하는 중앙 정치에 신물이 난 주 시장은 “더 이상 중앙정치는 하지 않겠다”며 고향인 남양주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마침내 그 꿈을 실현할 기회를 잡았다. 그가 시장에 당선된 뒤 꿈꾸는 미래의 도시상은 지금까지 시장들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지금까지 남양주 시장의 대부분은 타 지역 출신들이 권력과 정치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면 주 시장의 시장 입후보는 짐짓 진지하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주 시장은 “남양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우리 도시의 약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 “나도 그랬듯이 여기를 떠나 서울로 어떻게 가느냐가 우리 세대 토박이들의 목표이자 일념이었다”고 고백했다. 남양주에서 뿌리 내리고 살 수 있게 하는 게 주 시장이 꿈꾸는 ‘남양주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그린 청사진이 미래 세대에 대한 체육과 예술 교육이다. 앞 세대가 그랬듯이 자식에게 더 좋은 교육환경과 기회를 주기 위해 남양주를 떠나게 했던 아픈 기억과 경험이 이러한 정책 제안의 밑바탕이 됐는지도 모른다.

체육과 예술에 대한 감수성은 교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다. 지식 교육의 원천은 경험에 대한 기억이며 기억은 결국 감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남다른 교육철학과 풍부한 이론을 겸비한 주 시장은 체육과 예술이라는 두 영역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체육에선 손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또한 어른들의 스포츠로 자리잡은 테니스를 택했다. 테니스 매니아인 본인 스스로가 재능기부에 나서기로 했다. 그는 “테니스는 제대로 된 코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힘든 스포츠”라면서 “남양주시에 사는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테니스의 기본기를 배울 수 있게 하겠다”며 신바람을 냈다. 이에 따라 남양주시는 행정복지센터에서 관리하는 테니스장 18개소를 하교 시간에 맞춰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무료로 개방하고, 지도는 재능 기부를 통해 이뤄질 계획이다.

튼튼한 몸에서 싹이 돋는 예술적 감성도 교육에선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남양주시가 ‘테니스 교실’과 함게 추진 중인 ‘찾아가는 클래식 교실’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것도 바로 그래서다. 평소 초등학생들이 접하기 힘들었던 관현악기에 대한 이해와 오케스트라 공연을 해설과 함께 선보이며 예술적 소양을 함양하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게 남양주시의 야무진 포부다.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다. 4류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에겐 그럴 수밖에 없다. 무대를 불태우는 선동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가 필요한 한국 사회다. 미래 세대,그것도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체육과 예술에 대한 교육정책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의미있는 남양주시의 특별한 실험이 과연 어떤 열매를 맺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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