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최규리 기자] 국내 소비시장에 평균, 중간값이 실종됐다. 소비자들이 가성비 혹은 프리미엄만을 추구하면서 양극단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식음료는 가성비나 PB 제품으로 초저가를 선호하지만 의류는 신명품과 같은 고가를 선호하는 추세다. 이에 평균값이 사라지고 소비현상이 양극단으로 내몰리면서 이른바 ‘평균 실종의 시대’가 부상하고 있다.
◇ 먹는 건 그때그때 가능하니깐…“비싼 거 안 먹어도 돼”

고물가로 장기불황이 지속되면서 가성비 식음료를 찾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고 있다. NH농협카드는 저가커피 가맹점(메가커피·빽다방·컴포즈커피·매머드커피)과 그 외 커피 가맹점(스타벅스·할리스·엔제리너스·투썸플레이스 등)의 매출액 등을 분석한 결과 이처럼 나타났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 저가커피 프랜차이즈는 전년 대비 37% 성장했지만, 그 외 가맹점 매출은 9%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용 건수 역시 저가커피는 35% 증가했으나, 그 외 가맹점은 5% 증가했다.
커피 시장에서 저가커피 프랜차이즈의 매출 비중도 2022년 1월 23% 수준에서 2023년 12월 37%로 늘어났다. 특히 저가커피 소비 고객의 주 연령층은 MZ세대인 20~40대로 총 61%의 비중을 차지했다.
뿐만 아닌 고물가 영향으로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PB) 상품 매출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PB는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와 협력해 생산한 뒤 자체 브랜드로 내놓으면서 마케팅·유통 비용을 줄이고 소비자 가격을 낮춘 상품이다. 이마트 노브랜드, 롯데 온리프라이스, GS25 유어스 등이 대표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닐슨아이큐(NIQ)를 통해 오프라인 소매점 약 6500곳의 2022년 4분기∼2023년 3분기 1년간의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국내 PB 상품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1.8% 성장했다. 같은 기간 1.9% 성장에 그친 전체 소비재 시장 성장률보다 약 6배 높은 수치다.
부문별 PB 시장 성장률은 비식품 7.4%, 식품 12.4%로 식품 부문이 전체 시장 성장을 이끌었다. 소비자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이 품질 대비 저렴한 PB 상품 구매를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가성비 식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유통가 또한 PB 제품 개발에 집중해 성장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장근무 대한상의 유통물류진흥원장은 “유럽의 경우 경제 저성장기에 실속 소비 패턴이 정착하면서 자체 브랜드 시장이 크게 성장했는데 우리나라도 최근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 계속 입을 거니깐…“비싸도 괜찮아”

반면 의류 부문은 식음료 판매도와 상반된 기조를 보인다. 경기 불황 장기화로 비교적 저렴한 식음료 PB 제품, 저가 식음료 프랜차이즈가 인기인 것과 달리 고물가에도 불구 의류 부문은 강한 성장세를 보인다. 이 배경에는 ‘과시형 소비’인 사회적 피로도도 반영돼있다.
특히 주 소비층인 MZ세대를 중심으로 고가의 ‘신명품’ 브랜드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MZ세대 소비자들은 국산 브랜드보다 메종키츠네, 아미, 이자벨마랑, 메종마르지엘라, 아크네스튜디오 등 해외 컨템포러리 브랜드를 선호한다.
이에 백화점과 기업들은 해외 사업 비중을 늘리고 인큐베이팅 기능을 하는 편집숍 사업을 강화 중이다. 이들은 이커머스로 명품·해외 직구 시스템을 론칭하거나 신명품 브랜드 입점을 늘리고 있다.
삼성물산이 전개하는 메종키츠네, 아미, 르메르, 자크뮈스 같은 경우도 인기를 끌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패션부문에서 매출 2조510억원, 영업이익 1940억원을 기록해 연간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각각 2.5%, 7.8% 늘었다. 지난해 고물가와 소비 침체 속에서 유통업계가 실적 부진을 겪은 것과 대비된다.
LF가 전개하고 있는 이자벨마랑과 바버, 바쉬, 빈스 등의 수입 패션 브랜드 매출도 상승세다. LF는 영국 헤리티지 브랜드 ‘바버’(Barbour)의 스타필드 수원 매장이 오픈한 지 약 2주 만에 누적 매출 2억원을 돌파하고 약 3만명 이상이 매장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바버, 바쉬, 르메르, 메종키츠네 등과 같은 신명품은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일명 에루샤와 같은 하이엔드 명품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희소성을 중시하는 MZ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 점점 선호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과시 소비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양극단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 핵심으로 꼽힌다. 먹는 거는 사실 아무 때나 섭취가 가능하니, 꼭 비싼 거를 먹어야 한다는 수요가 크지 않다”며 “그러나 입는 것의 경우 보여지는 소비재이며 가전제품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구성이 있어 지속해 입는 상품이니 고가 브랜드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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