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죽였다. 권력이 공백을 허용하지 않듯, 대통령이 남기고 간 열매는 산 자의 몫이다. 행정 권력 2위 국무총리와 3위 경제부총리가 목숨을 건 아귀다툼을 시작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이다.

28일 공개되는 ‘돌풍’은 SBS ‘추적자’(2012)와 ‘황금의 제국’(2013), ‘펀치’(2014) 등 이른바 ‘권력 3부작’을 집필한 박경수 작가의 신작이다. 재벌, 사법 등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인간들의 몰락과 타락을 그려온 박작가가 정치판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권력을 탐했다가 몰락하는 박동호 국무총리는 설경구가, 불가능한 욕심으로 타락한 정치인이 된 정수진 경제부총리는 김희애가 맡는다.

설경구는 25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JW매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돌풍’ 제작발표회에서 “작가님의 글에 엄청난 힘이 있다. 대본을 순식간에 읽었다. 자칫 이 글을 망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출연을 망설였다. 김희애의 ‘강추’로 출연을 결심했다”고 출연계기를 밝혔다.

김희애는 “박경수 작가의 팬이다. 대본을 읽고 두근거렸다. 설경구에게 추천을 한 건 맞지만 ‘책을 읽으면 분명히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만큼 글의 힘이 강했다”고 말했다.

박작가는 전작에서 ‘전관예우’(전직 판사 또는 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하여 맡은 소송에 특혜를 주는 일)의 악랄한 관습을 꼬집고(‘추적자’), 재벌 권력의 추악함(‘황금의 제국’)을 담았다. 사법 권력의 썩은 욕망(‘펀치’)을 묘사하기도 했다.

스포츠에서 공수가 전환되듯, 누가 이길지 예상할 수 없는 흐름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캐릭터 전복이 박경수 작가 작품의 강점이다.

박 작가는 “낡은 과거가 현재를 잠식하고 미래의 씨앗은 보이지 않는다. ‘백마 타고 온 초인’을 믿지 않지만, 현실이 너무 답답한 탓에 초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 초인이 숨 막히는 세상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토대를 만들면 어떨까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권력을 소재로 이야기를 기획한 적은 없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현실의 모순이 권력과 연관됐다. 제 이야기에 권력 비판적 요소가 있다면, 현실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제가 관심있는건 ‘몰락하는 인간’이다. ‘돌풍’도 불가능한 욕심 때문에 끝까지 질주해 몰락을 맞이한 인간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박 작가가 쓴 문학적 토대 위에서 설경구와 김희애가 살얼음판을 걷는 권력 싸움을 벌인다. 자신의 욕망 때문에 서서히 몰락해가는 박동호와 이미 악의 무리와 손잡고 타락한 정수진의 맞대결은 누구 한명의 손을 들기 어려울 정도로 균형감과 매력이 있다.

설경구는 “박동호는 무모할 정도로 거침없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전략이 없는 것도 아니다. 혁신적인 개혁가”라며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다. 제 상상 속 바람이 담긴 인물”이라고 짚었다.

김희애는 “정수진은 누구보다 정의로웠지만, 맞닥뜨린 시대와 현실과 타협하면서 악으로 물들어간 인물이다. 악인이지만 박동호만큼 매력적이었다. 명대사가 많아 대사 한 줄을 아껴가며 소중히 연기 했다”고 미소지었다.

올바른 신념으로 가득 찬 인물이 현실과 마주하면서 점차 타락하는 과정은 박 작가 작품의 특징이다. 박 작가는 신념이 오히려 더 위험한 괴물을 탄생시킨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박 작가는 “박동호와 정수진은 제 안에 있는 두 가지 신념을 그린 인물이다. 신념이 욕망보다 더 위험하고 때론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 된다. 정수진은 타락한 신념, 박동호는 위험한 신념”이라며 “정수진은 과거로부터 온 인생을 지키고 싶어 현실을 왜곡해서 정의로운 신념의 외피를 쓴 것이고, 박동호는 현실이 잘못돼서 다 뒤엎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신념이다. 두 사람을 아프게 비판하는 마음으로 그려냈다”고 전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