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 기자] 쉴 틈 없이 몰아붙였기에 더 허무했다. 체력 우위를 점하며 승기를 잡으려는 순간 심판의 위장 공격 판정이 나왔다. 그렇게 결승 연장 혈투가 막을 내렸다. 28년만 한국 여자 유도 금메달을 바라봤던 허미미(22·경북체육회)의 첫 올림픽도 은메달로 마침표를 찍었다.
허미미는 30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아레나 샹드마르스에서 열린 57㎏급 결승전에서 캐나다 크리스타 데구치를 상대로 연장 끝에 석패했다. 세계랭킹 1위 데구치를 향한 3위 허미미의 도전은 패배로 끝났다. 지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허미미가 데구치를 꺾었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경기 내용이 특히 아쉬웠다. 정규 시간 4분에 승부를 가리지 못해 연장까지 갔는데 연장에서는 허미미가 확실히 우세했다. 허미미가 끊임없이 데구치를 몰아쳤지만 데구치는 제대로 반격하지도 못했다. 체력에서 확실히 우위를 점하며 포기하지 않고 엎어치기를 시도한 허미미였다.
연장에서 지도 동률을 이룬 순간 허미미가 결국에는 승기를 잡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허미미에게 위장 공격 판정이 주어졌다. 그러면서 데구치의 승리. 맹렬하게 몰아붙였던 허미미는 허무한 듯 고개를 숙였다.
언젠가부터 유도가 달라졌다. 하체 공격을 금지하면서 정적으로 변했다. 올림픽 기준으로 보면 2012 런던부터 그렇게 됐다. 한판승이 드물고 연장전이 부쩍 늘었다. 시원한 한판승보다 누가 더 적극적인지 판정하는 심판의 눈과 손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수비 지향적’ 유도가 대세가 됐다.
그런데 허미미는 다르다. 경기 내내 적극적이다. 선공격·후수비 마인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재미가 있다. 시종일관 엎어치기를 시도하기 때문에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공격만 잘하는 것은 아니다. 막을 때는 철통처럼 단단하다. 상대 굳히기에 버티다가 반격해 승리를 완성한다. 리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브라질 하파엘라 실바를 준결승에서 꺾은 모습이 그랬다. 허미미는 실바의 굳히기에 굳히기로 반격해 승기를 잡았다.
이러한 과정을 보여줬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2016 리우 올림픽 정보경(48㎏급) 이후 여자 유도에 첫 은메달도 선물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조민선(66㎏급)이 마지막이었던 여자 유도 금메달 희망도 허미미를 통해 생겼다.
허미미는 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일본인으로 이중국적자다. 독립운동가 허석의 후손인데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명문 와세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태극마크를 달기로 했다.
태극마크와 함께 도약했다. 2023 유도 국가대표 선발전 57㎏급에서는 우승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단체전에 출전했고 2023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2024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남다른 이력서만큼이나 유도 스타일도 인상적이다.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하는 유도에 재미와 승리를 두루 가져온 허미미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