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고아라는 바빴다. 어린 시절 데뷔해 일도 사랑도 즐길 시간 없이 살았다. ‘인생 총량의 법칙’처럼 작품이 없던 지난 시간은 온전히 휴식에 쏟았다. ‘반올림’(2003) 옥림이에서 ‘춘화연애담’(2025) 화리공주까지, 쉴 틈 없이 이어진 연기 생활에 쉼표를 찍고 숨을 돌렸다.

고아라는 최근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14살 때 데뷔했다. 그 시절에 남자 친구 손도 잡고 걸어보고 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너무 바빠 연애도 제대로 못했다”며 “지금은 사전제작이 일상화돼 있지만 그때는 매일 생방송처럼 드라마를 찍었다. 6개월 밤새우는 게 기본이었다”고 회상했다.

지난 6일 종영한 티빙 ‘춘화연애담’에서 맡은 화리공주는 이런 동병상련의 감정을 일게 했다.

“포장마차에 가서 떡볶이 먹는 것도 무서웠어요. 유독 여성 팬들이 인기가 많았는데 인파가 너무 몰려 서 있지도 못했어요. 내가 있으면 다치나 싶어서 어린 시절은 더 홀로 있어야 했어요. 화리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잖아요.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니 공부를 딱히 하지 않아도 그런 감정이 잘 이해가 갔죠(웃음).”

‘춘화연애담’은 남녀가 내외해야 하는 성리학적 질서와 충돌한다. 남녀의 뜨거운 사랑을 다룬 ‘남녀상열지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농염한 이야기를 쓴 저자는 다름아닌 화리공주였다. 남장하고 동정을 떼는 장면을 몰래 훔쳐보는 등 이야기를 축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성연대라는 주제 의식도 남겼다. “우린 갇힌 새가 아니야. 날아오를 거다”(화리)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주겠어?”(지원) 같은 대사가 대표적이다. 고아라는 “좋은 대사가 많아 가슴에 많이 와닿았다. 여성의 마음을 위로하고 대변하는 대사가 울림을 줬다”고 평가했다.

한동안 화면에서 모습을 감춘 건 드라마 촬영 도중 입은 부상 때문이었다. 겹겹이 누적됐다. 회복에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몸을 쓰는 작품은 제가 직접 다 했거든요. ‘페이스메이커’(2012)를 할 때는 장대높이뛰기 선수를 해야 했는데, 이신바예바에 빙의해서 했죠. 6개월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와이어를 탔어요. ‘파파’(2012)를 찍을 때는 타고난 천재 춤꾼을 연기해야 하니까 다리 찢기를 하다가 내전근이 파열됐어요. 축구 선수들이 주로 다치는 곳인데 의사가 왜 이런 데 다쳤냐고 묻더라고요. 하하.”

줄줄이 이어지는 작품에 스테로이드를 맞고 연기했다. 성나정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응답하라1994’(2013)에도 발목 부상까지 입은 채 작품을 마쳤다. ‘해치’(2019) 때는 6개월간 깁스를 한 채 촬영했다. 총36회 분량 중 10회 때 다쳤다. 치마로 깁스 부위를 덮고 다모에서 궁녀로 배역도 바꿨다.

이런 궂은일에도 고아라의 마음은 건강하다. 고아라는 “부상이 길다 보니 공백기가 생각보다 길어졌다”면서도 “그 기간동안 많이 회복했다. 성격이 미래지향적이라 과거는 별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을 다양하게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며 웃어 보였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