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인권 변호사가 직접 경험한 부조리 고발

현실과 마주한 불평등…‘정의’에 대해 묻다

존중받지 못한 목소리 대변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평범한 일상에서도 각자의 생각에 따라 차이를 띤다. 예술에 녹인 공연이라면 어떻겠는가. 누구에게나 호불호가 있듯, 현재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연극 ‘프리마 파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주인공이 여성이기에 페미니스트까지 거론될 정도다. 하지만 이는 단면만 본 후기일 뿐이다.

배우이자 공연예술가 이자람은 최근 스포츠서울을 만나 연극 ‘프리마 파시’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웠다.

‘프리마 파시’는 호주 인권 변호사 출신의 극작가 수지 밀러가 법률가로서 수년간 성폭력, 젠더 불평등, 계급 격차의 현실을 마주하며 법이 반드시 정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필한 1인극이다.

누구보다 법을 잘 알고 법정의 승리를 게임처럼 즐기던 변호사 ‘테사’가 성폭행 피해자가 돼 증언대에 서게 되는 과정, 피해자의 증언보다 증거에 힘을 싣는 모순을 지적한다.

논쟁의 발단은 여성에게만 편파적이라고 지적한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이자람은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이 또한 피드백으로 여겼다.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관객들의 입장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공연을 잘 봤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개인의 경험과 역사에 따라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는 스토리의 한 부분인 택시씬을 언급하며 “사건 전 택시 기사는 팁을 주면 미소 짓고, 승객이 원하는 장소로 데려다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테라’가 무너지는 순간의 택시 기사는 ‘테라’가 아닌 자신이 가고 싶은 데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두려움에 떨며 울고 있는 ‘테라’의 얼굴을 훑어본 후에 휴지를 건넨다”라며 “상황에 따라 정복되는 관계성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테사’는 죄가 있지만, 사회가 키운 괴물이라고 볼 수 있는가? 뒤에 숨어왔거나 어딘가 매달려있는 마리오네트였느냐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며 “‘나’라는 존재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 바로 ‘프리마 파시’다. 불도저 같던 사람이 자기가 세운 허들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게 ‘테사’다”라고 덧붙였다.

이자람은 인간이라면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힘 또는 보호받을 자격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뜨거운 페퍼민트 차를 대접했다고 가정해보자. 상대방이 한 모금 넘기는 것까지 동의해야 호의가 완성되는 것이다. 만약 페퍼민트 알레르기가 있다면, 차를 안 마실 권리가 있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이어 “우리도 살아가면서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 시간이 모두에게 촘촘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리마 파시’는 존중받지 못한 이들에게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 작품을 붙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품을 젠더 폭력 이슈로만 그치지 않길 바라고 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은 살면서 계속 안정적으로 내 주변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무언가에 의해 뒤집혀 나를 전복시켜버리기도 한다. ‘프리마 파시’는 어떻게 일어서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작품 속 사건은 다른 스토리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처이자 고통이다. 모두가 관람하고 함께 논의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리마 파시’는 17세 이상(2009년 포함 이전 출생자) 관람할 수 있다.

‘프리마 파시’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법률 용어로 일견(一見)을 뜻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표면상의 진실을 의미한다. 단순히 한 여성의 고통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해자의 아픔을 넘어 본질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이자람을 비롯해 김신록, 차지연이 이끄는 ‘프리마 파시’는 오는 11월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