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얼굴엔 때꾸정물이 가득하다. 마치 모니터 건너 편엔 시궁창 냄새가 진동할 것 같다. 공기는 축축하고 눅눅하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마포 나루 근처에서 상인들의 고혈을 쥐어짜며 연명하는 왈패들에게 품격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사실적인 고증이다.

그 토대 위에 있으니 배우들의 연기는 쨍하게 빛을 냈다. 이야기를 이끄는 주연 배우들은 물론 비중이 작은 배우들까지도 하나 같이 살아있는 연기를 펼친다. 전개도 느리고, 인상도 좋지 않으며 이야기도 무거운데 한 번 맛보면 두고 두고 기억이 난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탁류’의 감상이다.

중심엔 추창민 감독이 있다. 시리즈 물이지만, 장인 정신을 담았다. 배경에 가려질 법한 작은 소품 하나에도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하니, 배우들은 오죽했을까. 장이수로만 대변되던 박지환에겐 페이소스가 짙었고, 다소 되바라진 인물을 주로 연기했던 신예은에겐 청량함을 넣었다. 박정표나 최영우는 발굴했고, 로운과 박서함은 연기가 무엇인지 안 듯 표현했다.

추창민 감독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관습을 좋아하지 않긴 하다. 후반 작업할 때 신예은의 얼굴을 예쁘게 닦아냈더라. 여주인공은 이러는 게 불문율이라고. 내가 다시 다 지우라고 했다. 광채가 안 보이더라도 자연스러움이 더 예쁘다고 생각했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인공적인 걸 뺐다”고 말했다.

‘탁류’엔 거짓이 없다. 생동감이 넘친다. 시청자는 조선시대 중기로 빨려 들어간다. 퀴퀴한 냄새가 잔뜩 풍기는 강가 근처에 끌려가면, 저마다 욕망과 마주한다. 한 줌 되는 권력으로 서열을 나누는 왈패나, 왈패들이 마음껏 선량한 백성의 피를 빼먹을 수 있도록 뒤를 봐주는 탐관오리도 있다.

“자료를 찾아보면, 하층민은 오히려 유니폼처럼 정해진 게 없어 머리에 쓰는 두건부터가 너무 다양했어요. 그간 드라마는 궁중이 중심이다 보니까 하층민은 하나의 색으로 통일한 거죠. 저희는 왈패가 중심이잖아요. 김홍도 그림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처럼 개성을 부여했죠. 치아까지도 신경 썼어요.”

무덕 역에 신경을 많이 썼다. 수십 가지의 스킨 톤 테스트는 물론, 수염을 붙였다가 다시 떼는 실험 과정도 있었다. 지금껏 보지 못한 무덕의 얼굴을 완성해냈다. 초반부는 박지환의 원맨쇼다. 무덕이는 사실 뭐 하나 정이 가는 지점이 없다. 강자한테는 약하고 약자한테는 강하며, 무능력하기 그지 없다. 적당히 둘러대며 책임을 회피하는 데 힘을 쓴다. 사실상 매력이 없는데, 애잔함이 강렬하다. 왠지 모르게 불쌍하다. 마음 한 켠이 무겁다. 장이수로만 활용되던 박지환에게 짙은 페이소스가 담겼다.

“설경구는 설경구스럽고, 송강호는 송강호스러운 것처럼 박지환도 자신만의 색이 확고해요. 기존까지 해왔던 장이수 캐릭터는 지환 씨 속에 이미 일부분이 있기 때문에, 다 털고 새로운 인물이 되는 건 쉽지 않죠. 너무 많이 봐왔어요. 다른 연기를 끊임없이 부탁했죠. 잘 믿고 잘 따라와줬어요. 그래서 장이수 같지만, 다른 결의 무덕이가 탄생한 것 같아요.”

더 놀라운 건 왈패들의 앙상블이다.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시청자는 그 안에서 함께 춤 추는 기분이다.

“연극 출신 배우들이 많아서 일찍 친해졌어요. 특히 박정표는 정말 잘하더라고요. 새로운 발견이었어요. 국내에 좋은 배우들이 정말 많아요.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