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한국 드라마의 시간을 거꾸로 더듬으면, 어느 지점마다 이순재라는 이름이 겹쳐진다. 그 이름을 향한 마지막 작별 인사가 슬픔속에 진행됐다.

27일 오전 5시30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영결식장 입구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정장을 갖춰 입은 배우들과 방송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인사를 나누는 짧은 순간을 제외하면, 복도에는 거의 침묵만 흘렀다.

고인의 관이 영결식장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공간의 온도는 더 내려앉았다.

가천대 연기예술과 학생들이 운구를 맡아 조심스럽게 발을 옮길 때,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커졌다.

영정 앞에는 정부가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이 놓였고, 그 앞에 선 후배들은 한동안 고개를 쉽게 들지 못했다.

사회는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사위로 호흡을 맞췄던 정보석이 맡았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몇 마디를 채 잇지 못한 채 여러 번 말을 멈춰야 했다. “방송 역사와 연기 역사를 개척해오신 국민배우 이순재 선생님의 추모식을 진행하겠다”는 첫 문장부터 목이 잠겼다.

“선생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 후배들이 따라갈 수 있는 큰 역사였다”는 대목에선 끝내 눈물을 훔쳤다.

추도사에 나선 김영철은 오래된 동료이자 후배의 자리에서 심경을 털어놓았다.

“어떤 하루를 없던 날로 지울 수 있다면, 그날 그 새벽을 잘라내고 싶다. 오늘 이 아침도 지우고 싶다”는 말이 퍼지자, 장례식장 안쪽 여러 곳에서 다시 훌쩍이는 소리가 번졌다.

하지원의 추도사는 빈자리를 더욱 각인했다.

‘더킹 투하츠’로 인연을 맺은 그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순재 선생님을 이 자리에서 보내드려야 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입을 뗀 뒤 여러 번 말을 멈추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연기는 왜 할수록 어렵냐는 제 질문에 ‘지금 나도 어렵다’고 말씀해주셨다”고 기억을 꺼냈다.

영결식이 끝난 뒤 발인까지 이어지는 시간 동안, 슬픔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김나운은 상주 곁에서 수차례 손수건을 들어 올렸고, 정준하는 눈가가 심하게 붉어진 채 말을 잃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운구차가 장례식장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순간, 배우들은 양쪽으로 줄을 지어 서서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차가 천천히 출발하자 누군가는 허리를 더 깊이 굽혀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든 뒤 하늘을 잠시 올려다봤다.

1934년생인 이순재는 지난 25일 새벽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이후 ‘동의보감’, ‘허준’,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하이킥’ 시리즈, ‘꽃보다 할배’ 등 수많은 작품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지난해에는 드라마 ‘개소리’로 KBS 연기대상에서 역대 최고령 대상을 받았고,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는 인사를 남겼다.

kenn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