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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남미 축구 패권을 다투는 코파 아메리카와 여자 축구 세계 최강을 가리는 여자월드컵이 마지막 승부만을 남겨두고 있다. 5일(한국시간) 칠레-아르헨티나의 코파 아메리카 결승이 열리고, 다음날 미국-일본의 여자월드컵 결승전이 벌어진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코파 아메리카는 월드컵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남미가 세계 축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까닭에 대륙선수권 이상의 의미가 있는 빅 이벤트다. 여자월드컵 역시 전 세계 여자 축구 최고의 행사다. 이렇게 중요한 두 대회가 왜 동시에 열리고 있는 걸까? 국제 스포츠의 메가 이벤트들은 비슷한 시기의 개최를 피하는 것이 상식이다. 관심이 분산되거나 어느 한쪽이 묻혀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여자월드컵에서 왜 남미 국가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승은 물론 전날 벌어지는 3·4위전에도 남미 국가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남미는 오랫동안 세계 축구를 지배해왔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선수 펠레와 마라도나를 배출했고 현재 세계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리오넬 메시도 남미 선수다. 남미 국가들은 20번의 월드컵에서 9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최다 우승국도 브라질(5회)이다. 그러나 여자쪽은 다르다. 1991년 첫 대회 이래 여섯 차례의 여자월드컵에서 남미 국가는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결승에 오른 것은 2007년 브라질이 유일하며 4강까지 따져봐도 1999년 브라질이 3위를 차지한 것이 전부다. 이번 대회에서도 브라질과 콜롬비아가 16강에 진출했지만 둘 모두 8강에 오르지 못했다.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 등 남자 축구의 강국들은 여자 축구도 강하다. 남자 축구에서는 강자라고 할 수 없는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아시아의 일본과 중국도 여자 축구에서는 기세등등하다. 그런데 유럽과 함께 세계 축구를 양분하고 있는 남미, 항상 다크호스로 꼽히는 아프리카는 여자 축구에서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남녀 축구가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미국의 경우를 통해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 축구는 프로 스포츠로서는 미미한 존재지만 유소년 여가 활동으로는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다가 남자 아이들은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야구와 미식축구, 농구 등 다른 종목으로 옮겨 간다. 메이저리그와 NFL, NBA, NHL 등의 프로 스포츠가 인기를 누리는 미국에서는 대학을 비롯한 아마추어에서도 이들 종목으로의 쏠림 현상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자쪽에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가장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단체 스포츠가 축구다. 우수한 인적 자원이 참가하면서 수준도 높아지게 된다. 물론 그것만이 미국 여자 축구가 강한 이유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문화적인 환경이다. 미국은 여성의 권리와 동등한 기회 제공에 대한 관념이 강한 나라다. 모든 사회활동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고 스포츠 또한 마찬가지다. 여자가 축구를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사회인 것이다.

여자 축구의 결코 짧지 않은 역사에 비해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마찬가지다. 미국의 여자 축구 선수들도 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개별적인 환경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다. 축구가 삶의 일부라고 생각할 정도의 브라질에서는 1941년부터 1979년까지 30년이 넘도록 여자가 축구를 하는 것이 사실상 금지됐다. 축구와 여자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브라질 여자 축구 인구는 수백만명이나 되지만 여자 축구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지 못하다. 이같은 차별이 브라질로 대변되는 남미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에서는 1800년대 후반부터 여자들이 축구를 했다. 축구협회는 1921년 “축구는 여성에게 맞지 않는다”며 여자 축구의 공식 경기를 금지했다. 문제는 인식의 변화가 있느냐다. 런던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뒤 잉글랜드는 2010년 여자 프로축구 리그를 출범시켰다. 아직도 편견이 남아있지만 영국에서 여자 축구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변화가 없는 쪽도 있다. 남미축구연맹(CONMEBOL)이 캐나다에서 여자월드컵이 열리는 기간에 칠레에서 코파 아메리카를 개최하는 것이 여자 축구에 대한 무관심과 배척의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코파 아메리카의 열기 때문에 남미에서 여자월드컵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20세기 초반부터 계속돼온 차별과 편견은 지금도 축구에서 여성의 위치를 ‘섹시한 치어리더’로 제한하며 전혀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이번 여자월드컵 16강전에서 프랑스에 완패한 뒤 등록선수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이 2000명에도 못미치는데 비해 프랑스는 5만명에 가까워 저변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과는 당연한 것이며 16강에 오른 것만도 기적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2000-50,000의 차이는 여자 축구에 대한 인식의 차이, 더 나아가 그 사회에서의 여성의 권리와 지위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여자 축구 랭킹이 한 국가의 평등성에 대한 척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체육부 선임기자 bukr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