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장강훈기자] “오전 6시쯤 나와서 개인훈련에 사우나까지 마치고 집합하더라고요.”
‘전력의 절반’ 양의지(36·두산)의 증언이다. 세계 일류를 꿈꾸는 선수들은 준비 과정도 남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양의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니, 드러나는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거의 비슷한 루틴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KBO리그에 잘못 전파된 메이저리그(MLB)식 문화 중 하나가 ‘훈련 간소화’다. 몇해 전부터 “매일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은 많은 양의 훈련을 소화할 필요가 없다. 경기 당일 컨디션에 초점을 맞춘 루틴 정립과 지속적인 컨디셔닝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일부 팀은 단체 훈련량을 확줄였고, 연장 혈투를 치르거나 야간경기 후 오후 두 시 경기 등에는 팀 훈련을 생략하는 게 보편화했다.
이 자체로는 문제될 게 전혀 없다. MLB도 팀 훈련을 최소화하는 게 사실이고, 매일 경기를 치르는 주축 선수, 그러니까 풀타임 25인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는 철저히 자신의 루틴에 따라 몸을 풀고 경기에 나선다.
MLB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추신수(41·SSG)는 “MLB는 야구 괴물이 모여 사는 정글 같은 곳이다. 정글에서 살아남은 MLB 선수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준비한다. 훈련량이 적다는 얘기는 낭설”이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추신수는 스프링캠프에서는 오전 다섯 시께 구장으로 출근해 두 시간가량 개인훈련을 한다. 개인훈련에는 기술훈련도 있지만, 마사지 등으로 전날 피로를 푸는 과정도 포함돼 있다. 시즌을 준비하는 루틴과 경기를 준비하는 루틴에 차이가 있다.
양의지가 목격한 것도 이 부분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비를 위해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 모였을 때다. 양의지는 “오전 아홉 시에 구장으로 출발한다고 가정하면, 여섯 시 께 미리 출근해 개인훈련을 하더라. 자기만의 정립된 루틴이 있더라. 세계 일류를 꿈꾸는 선수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 주인공은 이정후(25·키움). 올시즌 후 MLB 도전을 선언한 이정후는 WBC 준비 과정에도 자기 루틴을 철저히 지켰다. 먼저 MLB를 경험한 박병호(38·KT)도 MLB에서 체득한 ‘준비과정의 중요성’을 여전히 실천하고 있다는 게 양의지의 설명이다.
KBO리그에도 이런 선수가 꽤 있다. 해외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그라운드 밖에서의 준비에 최선을 다한다. 보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양의지도 “타격감이나 컨디션이 좋을 때는 감각을 잃지 않는 수준으로 훈련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원인을 찾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영상도 보고, 전력분석팀이나 코치님과 대화를 통해 내가 느끼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의 차이점을 파악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무작정 배트를 많이 휘두르는 게 개인훈련이 아니라는 의미다.
때문에 ‘경기를 위한 컨디셔닝’은 일정수준에 도달한 선수에게 적용할 수 있다. 저연차 또는 1,2군을 오가는 선수는 당연히 기본기 위주로 훈련량을 늘려야 한다. 출전빈도가 낮으므로 몸이 기억할 때까지 훈련해도 기량을 확인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선수들조차 ‘경기 당일 컨디셔닝을 위해 단체훈련을 최소화한다’는 지침에 동화되면, 맹목적인 반복훈련만 하다 하루가 끝나기 마련이다.
KBO리그는 4~5년 전부터 육성기조로 흘러가는 중이다. 1군 경기로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를 키워서 쓴다는 게 골자인데, 이런 선수가 너무 많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개인훈련 루틴을 정립하기까지 과정에 코치진의 세밀한 지도와 인내심이 수반돼야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한채 ‘경기에 출전하다보면 일류가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는 건 과욕이다. 시즌 초반이지만, 과욕을 부리는 팀과 선수가 벌써 보인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