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수경기자] “대감독들과 작품을 했잖아요.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연출을 배웠죠. 하하.”

이번엔 하정우 감독이다. ‘허삼관 매혈기’ 이후 10년 만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영화를 찍었다”며 반성한 후 내놓은 작품이다. 골프장에서 골프채만 잡으면 180도 변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영화화했다. 제목은 ‘로비’다. ‘롤러코스터’(2013)와 비슷한 맥락의 말맛 B급 코미디다. 반응이 뜨겁다.

하정우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쇼박스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많은 감독님들을 만났다. 현장에서 배운 것을 종합해서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나의 연출의 장점이다”라고 밝혔다.

‘로비’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이 4조 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디테일이 달랐다. 프리프로덕션에서 철저하게 영화를 완성했다. 현장에서 정신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배우들과 서른 번이 넘는 대본 리딩을 거쳤다. 심지어는 엔화, 문화상품권 등 거마비까지 지급하며 배우들을 만났다. 수십 번의 리딩을 통해 하정우 특유의 말맛이 살아있는 작품이 완성됐다.

하정우는 “홍상수 감독님과 영화 촬영을 할 때 당일 아침에 시나리오를 주시더라. 왜 하필 촬영하기 직전에 줄까 궁금했다. 여쭤보니 홍 감독께서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올곧이 메시지가 담아내기 위해서다. 배우와 그 캐릭터를 어느 정도 컨트롤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저는 그렇게 가혹하진 않았다. 내가 배우이기도 해서 현장에서는 디렉션 할 겨를이 없다. 애드리브를 치고 상황을 바꿔도 되는데, 이 모든 것이 촬영 전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리딩 때 하나하나 채워나갔다”고 밝혔다.

‘로비’까지 무려 10년이다. ‘허삼관 매혈기’ 이후 연출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었다. 하정우만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덜 영글었다는 생각 때문에, 애써 참았다.

하정우는 “중간에 ‘서울타임즈’라는 작품을 집필하다 손을 놓았다. 확실한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보자 생각했다. 그러다 ‘로비’를 만나게 됐다. 내가 2020년 코로나 때 처음 골프를 배우게 되면서 이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하정우는 배우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계 거장들과 함께 작품을 해왔다. 최동훈-류승완-박찬욱-윤종빈-나홍진 등 국내 최고의 연출가는 하정우와 손을 잡았다.

“최동훈 감독님은 배우를 너무 사랑해요. 관심이 많고 꼼꼼히 기록하시죠. 현장에서 어떻게 애정을 가지고 일하는지를 배웠어요. 류승완 감독은 액션 찍을 때 효율적이에요. 박찬욱 감독님을 통해서는 프리 프로덕션 기간 활용을 배우고, 윤종빈 감독에게는 영화를 찍는데 가장 많은 가르침과 디렉션을 받았어요.”

하정우에게 ‘로비’는 어떤 의미일까. 하정우는 ‘로비’로 감독 하정우로서 노선이 정해졌다며 ‘방향성이 시작된 신호탄’ 같은 작품이라고 밝혔다.

“관객들이 와서 웃고 갔으면 좋겠어요. 낯설 수도 있겠지만 전작 ‘롤러코스터’가 있어서 설명하기는 편하네요. 코드에 맞는다면 재밌게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하반기에 공개될 작품 또한 비슷한 결로 갈 거에요. 철저하게 이런 스타일로.” yoonss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