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전란’에서 지금 한국을 보다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제61회 백상예술대상이 열린 5일 밤, 화려한 수상 퍼레이드 중 박찬욱 감독이 묵직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각본상 수상 소감에서 현 정치 상황과 맞물린 메시지를 전했다.

박 감독은 영화 ‘전,란’으로 신철 작가와 함께 영화 부문 각본상을 공동 수상했다. 무대에 오른 그는 “제가 연출하지 않은 영화로 각본상을 받은 건 처음”이라며 운을 뗀 뒤, 곧바로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오늘날 한국 사회의 유사성을 언급했다.

“전란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혼란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그래서 전쟁과 반란을 줄여 ‘전,란’이라고 지었다. 저는 요즘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보면서 ‘전,란’ 생각을 많이 했다. 큰 공통점이 있다. 용감하고 현명한 국민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다는 점이 그렇다.

이어 다가올 대선을 언급하며 선거에서 뽑아야할 리더의 덕목에 대한 소신을 드러냈다.

“전란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이제 우리 국민 수준에 어울리는 리더를 뽑아야 할 때가 왔다. 차승원 씨가 영화 속에서 연기한 못되고 못난 선조 말고, 진짜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아는 사람을 선택하자.”

이 발언은 단순한 정치 비판에 그치지 않고, 예술인이 자신의 창작 세계를 통해 시대를 어떻게 읽고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 ‘전란’은 400년 전, 그러나 지금 이야기

박 감독이 각본을 쓴 영화 ‘전,란’은 박정민이 연기한 무신 집안 출신의 종려와, 강동원이 연기한 의병 출신 몸종 천영이 조선의 붕괴를 각자의 위치에서 마주하며 펼치는 서사다. 차승원이 맡은 인물은 무책임한 왕 선조로, 백성을 외면한 권력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백상예술대상 뿐 아니라 여러 시상식은 단지 트로피를 주고받는 자리를 넘어 창작자들이 시대정신을 드러내는 곳이 되곤 하는데 박찬욱 감독의 이번 발언도 그 흐름 속에서 주요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의 거장이자 칸의 단골손님인 그가, 국내 시상식에서 직접적인 대선 관련 메시지를 던진 건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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