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 도입 후 잠수함 사실상 ‘전멸’

횡 변화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KS 엔트리 투수 28명 중 사이드암 딱 1명

타의에 의해 사라지는 씁쓸함

[스포츠서울 | 김동영 기자] 2024시즌 KBO리그에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 도입이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판정하게 됐다. 많은 것이 변했다.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로 2년차. ‘사라진’ 무언가가 있다. 잠수함 투수다. 이번 2025 한국시리즈(KS)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KS는 정규시즌 1위 LG와 2위 한화의 격돌이다. 나란히 투수 14명씩 등록했다. 그리고 딱 한 명, LG 박명근을 제외하면 모두 정통파 투수다.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놀랍지 않다. ABS 도입 후 옆구리-잠수함 투수가 고전했기 때문이다.

ABS존 스트라이크 기준이 있다. 홈 플레이트는 입체다. 중간면과 끝면에서 스치기라도 해야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온다. 앞에 안 걸리고, 뒤에 걸려도 볼이다. 거꾸로 역시 볼이다.

속구는 문제가 없다. 종횡으로 큰 변화 없이 비교적 ‘똑바로’ 가기 때문이다. 변화구는 얘기가 다르다. 특히 슬라이더를 비롯한 횡 변화구가 걸린다. 투심과 싱커도 마찬가지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커브도 스트라이크 던지기가 어려웠다. 언더-사이드암 투수들이 애를 먹은 이유다.

지난 플레이오프(PO) 3차전에서 나온 장면이 예시다. 4회초 삼성 아리엘 후라도가 한화 문현빈 상대로 카운트 0-2에서 3구째 몸쪽 높은 코스 투심을 던졌다. 휘어서 들어가니, 중간면은 걸치지 않았는데 끝면에는 스쳤다. 볼이다. 후라도는 아쉬워했다. 정통파 투수가 이렇게 던져도 볼이다. 잠수함 투수는 더 어렵다.

LG 정우영이 직격탄을 제대로 맞은 케이스다. 시속 150㎞ 이상 나오는 투심이 일품이고, 슬라이더 또한 날카롭다. 최근 2년간 크게 부진했다. 투구폼 수정 등도 있지만, ABS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크다.

정규시즌 내내 언더-사이드암 투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SSG 박종훈은 1군 5경기 출전이 전부다. 2025년 ABS존이 살짝 낮아졌지만, 그래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롯데 한현희 또한 2025시즌 1군 3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나마 종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투수는 좀 낫다. KT 고영표가 대표적이다. ABS존 하단에 살짝 걸치게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이 있다. 아예 떨어뜨려 헛스윙도 유도한다. 올시즌 11승, 평균자책점 3.30으로 부활에 성공했다.

우규민도 체인지업을 바탕으로 여전히 좋은 모습 보인다. 그러나 특수 케이스에 가깝다. 이들을 제외하면 부활에 성공한 잠수함 투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각 큰 슬라이더가 주는 쾌감은 이제 과거 일이 됐다.

ABS 도입 후 커브와 포크볼 등 종으로 변하는 변화구가 주목받을 것이라 했다. 실제로 그랬다. 슬라이더도 아래로 떨어뜨리는 투수가 많다. 잠수함은 어렵다. 정통파 투수여야 가능하다. 각 팀에서 잠수함 투수가 사라지는 이유다.

언더-사이드암 투수도 야구의 일부다. 다양한 투수가 있어야 재미도 있는 법이다. 세상이 변했다. 잠수함 ‘멸종위기’다. 타의에 의해 사라진다는 게 더 씁쓸하다. raining99@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