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자책으로 마음의 문 닫은 ‘로저’ 역

역할의 깊이로 인한 ‘늪’…한계 앞서 느낀 ‘공감’

극 중 ‘미미’ 덕분…현실은 진심 전한 동료의 힘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뮤지컬 배우 이해준이 연타석 조나단 라슨을 대변하고 있다. 먼저 뮤지컬 ‘틱틱붐’에서는 그의 삶을 그렸다. 지금은 그의 작품인 뮤지컬 ‘렌트’에서 실제 존재했던 그의 친구를 대신하고 있다. 완전히 다른 두 인물이지만, ‘존’에게서 탄생한 인물이기에 그의 내면을 동시에 비추고 있다.

이해준은 올해 10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렌트’에서 ‘로저’ 역을 연기하고 있다. 극 중 ‘로저’는 음악을 사랑하지만, 상처와 자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을 가둔 젊은 예술가다.

최근 2년간 그는 뮤지컬 ‘베토벤’ ‘모차르트!’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등에서 사랑받거나 존경받는 인물을 맡았다. 부드럽고 순수한 영혼을 연기했던 그가 ‘렌트’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주한다. 그러다가도 사랑 앞에서 지극히 순정남으로 심장을 갈아 끼운다. 시시때때로 돌변하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쏟아내면서도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미국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사는 젊은 예술가들과 치열한 삶을 음악으로 전하고 있는 이해준은 ‘로저’에 대해 “사람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상처 그리고 사랑이 많은 친구가 상처받으면 마음이 닫힌다. 겉으로는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여리고 어디 기댈 데 없는 나약한 사람이다”라고 소개했다.

‘로저’는 친구들을 위한 음악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집 밖을 나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사실 전 여자친구가 자기 탓에 죽었다는 자책감 때문에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갔다. 이해준은 이러한 ‘로저’를 “새장에 갇혀있는 새”라고 설명했다.

‘로저’를 어둠의 터널에서 꺼내준 것은 바로 동성애, AIDS, 마약 등에 빠져, 세상에서는 ‘인간 말종’이라고 불리는 친구들이었다. 이들은 ‘로저’를 때론 아들처럼 다독였고, 이성과의 관계에 다시 눈뜰 수 있도록 손잡아줬다.

이해준은 “배역에 빠져들다 보니 괜히 우울해졌다. 모두 웃고 떠드는데 즐겁지 않았다”라며 “앤디 세뇨르 주니어 협력 연출이 “More(더)! 화내는 장면에서 ‘그건 해준이의 화야, 로저는 그렇게 화내지 않아”라고 외쳤다. 폭발 직전의 폭탄처럼 끄집어내려고 했으나, 마음처럼 쉽지 않아 답답했다“라고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렸다.

이해준은 앞선 2시즌에서 ‘로저’ 역을 맡았던 장지후의 진심 어린 조언 덕분에 고민의 실타래를 풀 수 있었다. 그는 “(장)지후가 전 시즌에서 ‘로저’를 연기하면서 ‘넌 생각보다 밝은 거야’라며 경험했던 극복 과정들을 말해줬다”라며 “이후 ‘로저’의 상처를 공감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접근이 어렵지 않았다”라고 ‘로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던 바탕을 이야기했다.

그는 “경험하지 않은 것까지 상상으로 끌어와야 했기에, 일반 감정보다 더 깊이 그리고 절실하고 간절하게 답하려고 노력했다”라며 “누군가 새롭게 마음에 품으면 배신이고, 그럴 자격도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한 줄기 빛 같은 존재 ‘미미’를 만나면서 오직 오늘을 위해 살려는 이들 앞에서 혼자만 갇혀있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전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었을 때 비로소 이야기가 완성됐다. 이해준은 “스스로 방어 기질을 갖췄던 ‘로저’가 특히 ‘미미’의 사고방식에 매료되면서 삶의 터닝포인트를 찾는다”라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성장한다. 도움을 받지만, 스스로 가사로 뱉으면서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뻗는다”라고 말했다.

이해준은 “‘렌트’는 결국 연대해서 살아가는 것이 곧 힘이라고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화려한 작품보다 울림이 있고 ‘함께’라는 관계의 소중함을 보여주면서 주변을 챙기면서 같이 나아가는 것을 느끼게 한다”라며 “많은 분이 공연장을 찾아 따뜻한 겨울을 보내시길 바란다”라고 초대장을 남겼다.

사랑의 기쁨이 어떠한 처방 약보다 강한 치유의 힘이라고 강조하는 ‘렌트’는 내년 2월22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티움에서 이어진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