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국민 배우’, ‘현역 최고령 배우’, ‘KBS 연기대상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까지, 배우 이순재를 수식하는 말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젠 영면에 든 이순재이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故 이순재는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네 살 무렵 조부모를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 유년 시절엔 할아버지와 함께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해방을 맞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한국전쟁을 겪는 등 대한민국 현대사와 함께 성장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한 뒤에는 스크린 속 배우들을 보며 연기에 대한 꿈을 키웠다. 특히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 ‘햄릿’은 그의 인생을 바꾼 작품이었다.

그의 첫 작품은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다. 이후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가 되며 본격적인 매체 활동을 시작했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굵직한 작품은 물론, 조·단역까지 가리지 않는 활발한 활동으로 꾸준히 존재감을 쌓았다.

특히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다수의 사극에 출연하며 ‘사극 장인’의 면모를 보여줬다. ‘사모곡’ ‘상노’ ‘풍운’ ‘독립문’부터 ‘허준’ ‘이산’ 같은 히트작에서도 활약했다.

그가 대중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은 1991~1992년 방영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다. 최고 시청률 65%를 기록한 초대형 히트작으로, 이순재는 ‘대발이 아버지’ 역을 맡아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안주하지 않았다. ‘국민 배우’라는 무게를 내려놓고 친숙하게 다가온 계기는 2006년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극 중 ‘야한 동영상’을 외치는 ‘야동순재’ 캐릭터로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얻었다.

이후 예능에서도 활약했다. tvN ‘꽃보다 할배’에서는 신구, 박근형, 백일섭과 함께 황혼의 배낭여행을 떠나며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줬다.

무대에 대한 애정도 여전했다. 2021년 연극 ‘리어왕’에선 약 20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의 방대한 대사를 직접 소화해 관객을 놀라게 했고, 2023년에는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를 직접 연출해 무대에 올렸다.

그런 이순재는 지난해 건강 문제로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면서도 직전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2 ‘개소리’ 등에 출연했다. 같은 해엔 ‘2024 KBS 연기대상’에서 역대 최고령 대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정치 경력도 있다. 제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민자당 부대변인, 한일의원연맹 간사 등을 역임했다.

또한 연기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에서 석좌교수로 활동하며 후배들에게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왔다. sjay09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