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모두가 혼비백산이다. 서슬퍼렇게 질려 있다. 건장한 남자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무서워할 때, 한 여인이 들어온다. 저벅저벅 거침없다. “혼 좀 나야겠다”고 한 뒤 물을 뿌렸다. 기세 좋던 남자 아이는 악을 쓰며 괴로워했다. 남자는 의식을 잃었고, 악령은 사라졌다. 길고 긴 싸움의 서막이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검은 수녀들’은 구마의식으로 첫 시퀀스를 꾸몄다. 남자는 악령에 씌인 20대 남자는 희준(문우진 분)이고 여자는 유니아(송혜교 분) 수녀다. 유니아는 청각장애를 앓고 있지만, 악마의 소리는 그 무엇보다 생생히 듣는다는 특성이 있다. 태아 때부터 무당이 될 팔자였던, 귀태인 셈이다. 귀신의 아이란 무속용어로, 유니아는 악령과 귀신, 무당과 친숙하다. 살면서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인지, 유니아는 늘 덤덤하다. 회색빛 무표정에서 강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송혜교가 오컬트 장르에 도전하는 것만으로 화제를 모은 ‘검은 수녀들’의 핵심은 두 여성의 연대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배경으로 목숨을 살리기 위해 성격도 결도 다른 두 여자, 유니아와 미카엘라(전여빈 분)의 연대가 큰 줄기를 이룬다.
공통점이라고 하면 귀태라는 점, 악령을 온몸으로 느낀다는 데 있다. 유니아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미카엘라는 어떻게든 거부하며 살아가고 있다. 현실을 받아들인 유니아는 안정적이고, 미카엘라는 늘 불안하다. 미카엘라의 불안이 희석되는 가운데 유니아의 숭고한 희생이 빛나는 이야기다.
‘더 글로리’ 이후 장르물에 끌리고 있다는 송혜교는 ‘검은 수녀들’에서 또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무표정에 냉소적인 얼굴, 화가 날 때 거침없이 내뱉는 욕설, 편견에 대한 저항 등 강한 여인의 면모가 엿보인다. 회색빛 무표정이 상상력이 적극 가미된 이야기를 설득한다.
주체적인 여성을 주로 그려온 전여빈은 소극적이고 불안한 얼굴도 훌륭히 그려냈다. 상대 눈을 또렷이 보지도 못하고, 늘 주눅들어 있는 얼굴이 색다르다. 후반부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는 감정은 감동을 낳는다.
악령에 씌은 희준을 연기한 문우진은 강렬하다. 어려운 연기였을텐데 온 몸으로 표현했다. 선한 인상의 평소 모습과 악으로 돌변한 악령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이어놨다. 보석이 발굴된 셈이다. 무당 역의 김국희는 또 다른 아우라를 스크린에 펼쳤고, 말더듬이 역의 애동도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빈틈 없는 연기가 ‘검은 수녀들’에서 엿보인다.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과연 나는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한 여인의 용단이 스스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오컬트 요소로 눈을 사로잡고, 분명한 메시지로 생각하게 만든다.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완성도다. ‘파묘’(2024) 덕분에 오컬트 장르가 대중화를 이룬 덕을 톡톡히 보지 않을까 전망된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