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의학드라마’가 다시 돌아왔다.

2023년 겨울 전공의 파업으로 의료 현장이 멈췄을 때 안방극장도 함께 숨을 죽였다. 당시 전공의 1만 3000여명 중 약 7800명이 집단 사직하며 진료 공백이 생겼고 ‘의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콘텐츠는 조심스레 한 발 물러섰다.

시간이 흘렀다. 의료계가 어느 정도 정리됐다. 전공의들이 복귀를 선택했다. OTT 플랫폼에서도 하나둘 의사들이 돌아오고 있다.

의학드라마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긴박함과 윤리의 갈등을 다루기 때문이다. 한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젊은 의사가 있는가 하면, 권력에 취한 병원 시스템 속에서 타인을 도구처럼 여기는 이른바 ‘빌런 의사’도 등장한다.

시청자는 이런 극적인 대조 속에서 현실에 없는 정의와 헌신을 보고 싶어 한다. 의학드라마의 인기는 결국, 현실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의료인의 존재를 통해 위안을 얻으려는 감정적 수요와 맞닿아 있다.

특히 드라마는 본질적으로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야기가 가진 갈등의 깊이와 그것이 도달하는 종착점에 따라 시청자의 몰입도는 크게 달라진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단순한 말싸움이나 감정적 상처로 마무리되는 갈등은 극적인 밀도를 확보하기 어렵지만 생명과 죽음처럼 결정적인 순간으로 연결될 경우 드라마는 비약적으로 극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의학드라마는 가장 높은 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르다. 환자의 생사가 갈리는 공간인 병원은 극적인 서사를 구축하기에 더없이 유리한 배경이 된다. 여기에 성장 서사가 더해지면 시청자의 감정이입은 더욱 강해진다. 개인의 성장이 타인의 생명을 지켜내는 행위와 맞물리는 순간, 이야기는 단순한 장르를 넘어선 울림을 갖게 된다”고 분석했다.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은 우여곡절 끝에 12일 전파를 탄다. ‘언슬전’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의 첫 번째 스핀오프로,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1년 차 레지던트 오이영(고윤정 분), 표남경(신시아 분), 엄재일(강유석 분), 김사비(한예지 분)의 성장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턴과 전공의 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리는 이들의 미성숙한 감정과 일상, 그리고 관계의 서툼에 집중한다. 수술의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인 ‘인간 중심’ 의료 서사다.

지난해 공개 예정이었지만 2023년 2월 촉발한 의료대란 탓에 일정을 전면 연기했다. ‘언슬전’이 공개를 결심한 배경에는 연이어 공개된 의학드라마들의 흥행이 있다.

1월 넷플릭스가 스트리밍한 중증외상센터는 응급의료 현장의 고된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호평받았다. 실제에선 존재하기 어려운 ‘진정한 의사’의 모습, 즉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시스템과 타협하지 않는 헌신적인 인물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이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자 동시에, 대중이 갈망하는 의사의 상을 투영한 판타지다.

디즈니플러스가 3월 공개한 하이퍼나이프는 의학과 스릴러를 결합한 독특한 설정으로 주목받았다. 욕망과 광기를 동시에 지닌 천재 의사 정세옥(박은빈 분)과, 그를 가르친 냉철한 스승 최덕희(설경구 분)의 첨예한 대립 구도가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기존 의학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운 범죄적 요소와 예측 불가능한 인물 구성은 시청자에게 신선한 자극을 안겼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의료 대란이 어느 정도 정리된 상황에서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이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콘텐츠가 얼마나 내실 있게 만들어지느냐다. 작품이 이런 부분을 담보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