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게 있단 말인가. 치열하게 승부에 임한 다른 출연자들의 김만 샜다. 오랫동안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즐긴 시청자들은 분노만 느꼈다. 최종 결승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허다하다.

넷플릭스 예능 서바이벌 ‘데블스 플랜: 데스룸’(이하 ‘데블스플랜2’)에는 서바이벌 예능의 문법을 깬 두 플레이어가 존재했다. 윤소희와 규현이다. 선한 이미지를 얻기 위함이었는지, 자신의 생존은 안중에도 없이 철저히 이기적인 정현규에게 자기 생명을 바치는 플레이로 일관했다. 생존 의지, 우승 의지는 엿보이지 않았다. 의미없는 감정에 매몰된 ‘착한 척’에서 그쳤다. 서바이벌에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최악의 플레이어다.

서바이벌에 출연한 연예인 중엔 장동민이나 서출구, 하석진처럼 영리하게 판을 이끈 플레이어가 있는 반면, 노홍철이나 은지원처럼 무임승차로 생존하는 플레이어가 있다. 규현은 굳이 꼽자면 후자다. 필승법을 찾은 적이 없었다. 첫 판을 제외하면 사실상 존재감이 없었다. 뛰어난 계산기 윤소희와 넓은 시야를 가진 티노, 냉정한 승부사 정현규에게 붙어 무임승차로 일관했다.

덕분에 정현규는 가장 많은 양의 피스를 보유했고, 더불어 히든 스테이지 보상도 쥐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현규의 우승이 불보듯 뻔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규현에게 정현규를 견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여기서 최악의 플레이가 나왔다.

“배신을 하겠다”고 정현규에게 알려주는 것도 모자라 정현규가 고립되자 모든 판을 깨고 그를 도와주려 했다. 자신이 정현규를 도와줄 능력이 되는지 안 되는지 혹은 역으로 자기가 당할 수 있다는 수도 계산하지 않고 무작정 연합을 깬 것이다. 결국 정현규 대신 규현의 목숨만 사라졌다. 서바이벌 예능 역사상 가장 바보 같은 플레이다.

윤소희는 더 이상하다. 유일하게 정현규를 이길 수 있는 존재였다. 실력 면에서도 정현규에게 뒤쳐지지 않았다. 여러 차례 필승법을 찾은 윤소희여서 ‘첫 여성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기대케 했다. 후반부로 지나갈 수록 윤소희는 서바이벌 예능에서 볼 수 없는 플레이로 일관했다. 정현규가 우승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X의 줄임말)나 ‘연프 출연자’(연애 프로그램 출연자)라는 조롱이 나오는 배경이다.

10화 정현규를 감옥동으로 보낼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그를 도와줬다. 윤소희에겐 아무런 득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정도 목숨값이라면 피스 5개를 받아도 부족할 판에 피스 1개로 만족해 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정현규를 견제하는 상황에서 홀로 철통방어에 나섰다. 정현규를 제외한 플레이어와 결승에 가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정현규를 택해 3억8000만원 상당의 보상을 날린 셈이다. 정현규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한 세븐하이가 탈락하면서 ‘데블스플랜2’를 하차한 사람이 적지 않다.

서바이벌 예능의 묘미는 최후의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연자들의 처절한 싸움이다. 필승 전략을 찾다 실패하면 살기 위해 배신과 음모, 트롤링(관심을 끄는 예측 불허의 플레이)마저 일삼는 데, 그조차도 용납되는 공간이다. 모든 것이 살기 위한 액션이라고 하면 모두 이해가 된다. 슬기로운 배신을 통해 승리하면 ‘위대한 승부사’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서바이벌 예능을 창조한 tvN ‘더 지니어스’ 중 아직도 회자되는 대목은 이른바 ‘콩픈패스’다. 오픈패스와 홍진호의 별명 콩을 조합해 만든 언어다. 홍진호는 다수 연합 사이에서 홀로 필승법을 만들어 메인매치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

뛰어난 출연자가 각종 모략을 이겨내고 영웅처럼 우뚝서는 드라마틱한 광경을 보고 싶은 게 서바이벌 예능 애청자의 심정이다. 필요할 땐 연합을 하지만, 연합이 무의미하면 홀로 플레이를 해 이기는 승부사의 면모를 보고 싶은 것이다.

‘데블스플랜2’에서는 그런 지점이 없었다. 홍진호의 포지션을 가진 이세돌과 저스틴 민은 예상보다 빨리 탈락했다. 감옥의 여신 손은유와 위기마다 리스크 있는 플레이를 감수한 강지영, 엄청난 집중력을 보인 세븐하이처럼 매력적인 플레이어들은 규현과 윤소희의 무의미한 희생에 무너졌다.

규현과 윤소희를 향한 비난이 거센 건 정현규가 매력적이지 않은 탓도 있다. 정현규가 특별히 잘못된 플레이를 한 건 아니지만, 대중이 좋아할 면모는 갖지 않았다. 지나치게 이기적일 뿐 아니라 자기가 남을 배신할 땐 ‘게임은 게임이니까’를 강조하고, 수세에 몰렸을 땐 ‘나 외로워’로 동정심을 유발했다. 최현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 플레이를 하자 “너 산수할 줄 알아?”라는 비아냥거렸다.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도 잠시 “내일은 너랑 안 해”라며 상처주는 말을 던졌다. 규현과 소희를 제외하곤 조금도 공감할 줄 모르는 태도로 일관했다. 똑똑한 건 알겠지만, 좋아하긴 도저히 힘든 인물이다.

이러한 상황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정종연 PD는 ‘더 지니어스’와 ‘소사이어티 게임’을 거치면서 합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데블스 플랜’ 시리즈도 약 일주일 이상을 먹고 자고 지내는 구조로 만들었다. 1~2주에 한 회차 촬영하는 ‘더 지니어스’의 경우 뒤풀이 술자리에서 출연자들 간 연합이 생성돼, 이야기의 흐름을 담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덕분에 ‘데블스 플랜’에서는 연합의 이유와 배경을 시청자가 알 수 있게 됐다. 다만, 서바이벌에 의미 없는 감정적 교류가 급격히 커지면서 자기를 죽이고 남을 살리는 이상한 형태의 연합이 생성되는 단점도 생겼다. 시즌1에서는 궤도가 여러 사람을 챙기려는 모습으로 불편함을 야기했다면, 시즌2에서는 이유없는 감정으로 인해 처절한 생존 싸움을 하자는 의도가 희석됐다. 어줍잖은 친목 도모에 그치게 된 것이다. 각종 게임과 심리전을 위해 준비한 제작진의 노력조차 물거품이 된 셈이다.

여전히 정종연 PD의 서바이벌을 기다리는 시청자가 적지 않다. 출연자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생성하고 각종 사연과 이야기를 물 흐르듯이 그려내며, 창의적인 게임을 찾아내는 능력은 국내에서 최고다. ‘데블스플랜’의 장점이 분명한 가운데 ‘더 지니어스’만큼 평가가 좋지 않은 건, 어쩌면 합숙이라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깊게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