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이혜영은 홍상수 감독에 대한 반감이 제법 컸다. ‘생활의 발견’(2002)을 보곤 “저 지루한 영화는 뭐냐”고 생각했다. 첫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2021)를 미심쩍었던 감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소설가의 영화’(2022), ‘탑’(2022) ‘여행자의 필요’(2024)를 연이어 찍으며 앞선 감정은 경외심으로 반전됐다.

이혜영은 최근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설거지를 하다 ‘생활을 발견’을 봤다. 이상하면서 지루했다. 그러다 홍 감독을 만났다. 하고 싶지 않았다. 사건과 상황이 펼쳐지는 영화를 좋아했지, 아무 사건이 없는 걸 왜 영화로 만드는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다만 어렸을 때 (홍상수 모친) 전옥숙 여사를 만났다. 보통 카리스마가 아니었다. 대단한 사람의 아들”이라며 만남을 수락한 이유를 밝혔다.

전옥숙은 ‘대중문화계 전설적 여걸’로 꼽히는 여성 영화 제작자다. 한국 최초로 1963년 영화 제작 스튜디오 ‘은세계영화제작소’를 차린 데 이어 1984년 대한민국 내 최초로 외주제작사 ‘시네텔서울’을 설립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조용필의 ‘생명’(1982)을 작사하는 천부적인 기질도 가졌다. 이혜영의 부친 이만희 감독과 전옥숙의 인연이 이혜영과 홍상수를 이어준 계기가 됐다.

“홍 감독이 유학파에 화려한 귀공자라고 생각해 떨떠름하게 생각했죠. 해외 영화제만 나가면 상을 받고 와서 그런가보다 했고요. 첫 영화(‘당신얼굴 앞에서’)를 찍는데 대본도 없이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경험이 모든 걸 바꿔놨죠. 만나는 순간부터 촬영까지. 그건 반복될 수도 기록할 수도 없는, 그 자체로 아트였어요.”

모든 과정이 순조롭진 않았다. 이혜영은 “두 번째(‘소설가의 영화’)는 숨 막혔고, 세 번째(‘탑’)는 미쳤지 싶었다”며 “그런데 영화를 보면 잘했다 싶고 그랬다”고 웃어 보였다.

한편 이혜영은 최민식이 멜로 역의 상대로 자신을 꼽았지만, 그를 거절한 이유도 밝혔다. 이혜영은 “사실 멜로나 로맥틱에 익숙하지 않다. ‘애정의 조건’(1983) 같은 홈 드라마를 좋아한다. 셜리 맥클레인이랑 잭 니콜슨이 나오는 그런 게 좋다”며 “최민식과 영화를 찍으려면 스릴러 영화 ‘샤이닝’처럼 살벌하게 증오하는 걸 찍어야 재밌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2022)에서 호흡을 맞출 당시 어려웠던 점도 밝혔다. ‘카지노’에서 이혜영은 볼튼 카지노의 큰손 고 회장으로, 최민식은 필리핀 카지노의 제왕 차무식으로 나왔다.

“최민식이 그렇게 만만한 배우가 아니에요. 연극 때도 같이 한 적이 있고, ‘카지노’ 할 때도 느낀 건데 압도당하는 뭔지 모를 힘이 있어요. 내가 이런 식으로 연기를 보내면, 그게 잘 안 가요. 연기가 왜 이렇게 되지, 내 연기가 맘에 안 드는 순간이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최민식을 도통 모르겠어요.”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