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과거 ‘아이돌 출신’이라는 수식어는 연기력 논란의 방아쇠다.

화려한 무대 위 퍼포먼스와 달리, 카메라 앞에서는 어색한 표정과 부자연스러운 말투가 드러난 바 있다. 심지어 숨(호흡)도 제대로 못쉰다. 뛰어난 연기를 경험한 대중은 실력의 부족을 직감한다. 인기만으로 캐스팅됐다는 시선이 뒤따른다. 반응은 냉담할 수밖에 없다. ‘발연기’라는 조롱도 따라붙는다.

크게 달라졌다. 최근 드라마 속 아이돌 출신 배우들은 어설프지 않다. 무대에서 갈고닦은 표현력에 철저한 연기 트레이닝을 더한 덕분이다. 카메라 앞에 선 순간 이들은 더 이상 ‘아이돌’이 아니라 ‘배우’다.

아이돌 발연기가 사라졌다. 체계자체가 달라져서다. 요즘 아이돌 연습생은 데뷔 전부터 연기 수업을 받는다. 전문 트레이너에게 카메라 연기, 발성, 감정 표현을 배운다. 오디션을 위해 대본 리딩도 반복한다. 춤과 노래만 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올 라운더’가 기본이다. 아이돌 수명이 생각보다 훨씬 짧아졌기 때문이다. 연기자의 전향은 수순이다. 덕분에 트레이닝 과정이 더 복잡해진 것이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요즘 연습생들은 카메라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다. 데뷔 전부터 철저히 준비한다. 아이돌 스스로도 연기에 진지하다. 춤, 노래뿐 아니라 연기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고 전했다.

이같은 배경에는 영상콘텐츠 제작사의 전략 변화도 있다. 예전엔 화제성을 우선했다. 팬덤 크기나 해외 인기만으로도 주연이 결정되곤 했다. 연기력은 후순위였다. 이 기준이 달라졌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연기력이 없으면 바로 티가 난다. 시청자 수준도 높아졌다. 화제성만으로는 작품이 무너지기 쉽다. 요즘은 연기력과 화제성을 동시에 갖춘 인재가 많다. 당연히 둘 다 가능한 배우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달라진 기준 속 혹독한 훈련과 준비로 ‘배우’로 인정받는 아이돌 출신이 적지않다. 임시완, 이준영, 박지훈, 정은지, 나나, 한선화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제국의 아이들 출신 임시완은 ‘비상선언’ ‘1947보스톤’을 비롯해 영화와 OTT를 넘나들며 엄청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광기에 있어서는 대항마를 찾기 어렵다. 유키스 출신 이준영은 액션 연기에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다. 넷플릭스 ‘D.P.’ ‘황야’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유독 시원한 발차기를 날렸다. 최근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에서 감정에 솔직한 청춘 박영범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프로듀스 101’ 출신 박지훈은 넷플릭스 ‘약한영웅’ 시리즈에서 고등학생 연시은으로 대중의 관심을 샀다. 비록 대사는 적었지만, 다채로운 감정 표현으로 몰입감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자 못지 않게 여배우들도 뛰어나다. tvN ‘굿와이프’로 첫 연기에 도전한 에프터스쿨 출신 나나는 넷플릭스 ‘글리치’ ‘마스크걸’에서 짙은 카리스마를 뽐냈다. 에이핑크 출신 정은지는 ‘응답하라 1997’로 ‘개딸’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서도 에너지 넘치는 MZ 취준생으로 변모해 극을 활기차게 이끌었다. 매사 사랑스러운 시크릿 출신 한선화는 티빙 ‘술꾼도시여자들’과 영화 ‘파일럿’ JTBC ‘놀아주는 여자’에서 극강의 러블리한 매력을 그렸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최근 아이돌 출신 배우들은 연기자로 성장하기 위해 과거보다 훨씬 진지한 자세로 연기에 임하고 있으며, 기초 연기력 또한 잘 갖춰져 있다. 진지한 배역을 맡아도 진정성있는 연기로 호평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덕분에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연기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고있다”고 설명했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