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홍상수의 블랙코미디는 여전하다. 새 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14일 개봉)는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언어에서 불협화음을 빚어낸다. 처음엔 진폭이 적지만, 갈수록 커진다. 이는 등장인물 간의 관계가 틀어지며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등 그의 영화에서 숱하게 반복되온 보법이지만, 또다시 새롭게 느껴지는 건 그가 가진 독보적인 능력 덕택이다.

이 영화는 홍상수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30대 시인 동화(하성국 분)는 3년을 사귄 여자친구 준희(강소이 분)의 집을 방문한다.

홍상수는 첫 쇼트에서부터 주인공 남녀가 의도적으로 관객을 등진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앞으로의 주요 장면을 이렇게 보여주겠단 예고이기도 하다. 경기도 여주에 지은 커다란 전원주택 앞에서 낡은 프라이드 차를 타고 올라간 뒤 준희의 아버지 오령(권해효 분)은 차가 멋지다고 말하면서도, 왜 중고차를 타냐며 불편한 질문을 연이어 던진다.

“막걸리 좋아하는데 괜찮지?”로 시작된 술의 대화는 질문과 답으로 이어진다. 수염은 왜 길렀냐, 밥벌이는 무엇으로 하냐는 등 신상을 캐묻는 질문이 이어진다. 당연히 할 수 있는 보편적 얘기로 느껴지지만, 관객을 등진 채 제3자가 이들 대화를 지켜보게 만들어 ‘이렇게 들으니 무척 불편하지 않냐’는 식으로 보여준다.

집 밖을 벗어나 여주 신륵사에 가면서 갈등은 조금씩 증폭된다. 동화는 여자친구의 언니 능희(박미소 분)와의 대화에서 미묘한 불편함을 느끼고, 이는 저녁 술자리에서 폭발하게 되는 촉매제가 된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술과 밥은 중요한 의식이다. 인간 내면에 있는 속내를 술을 통해 끄집어내고, 밥을 먹는 행위에서 갈등을 터뜨리는 패턴이 많았다. 동화는 면접 자리에 가까웠던 술자리에서 과음한 나머지 자신의 콤플렉스를 드러내고 말았다. 변호사인 아버지가 뒷배로 있기에 시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능희의 질문에 결국 화를 내고 만다. 자신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는 이들에 대한 외침이자, 중고차-콧수염-아버지로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과정이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나른한 초록색 자연 뒤 가시 돋친 대사로 상영시간 2시간을 꽉 채운다. 몸을 늘어트리고 영화를 보다 점점 자세를 바로잡고 보게 되는 것도 이런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준희의 부모가 동화에 대해 험담하는 장면에서 씁쓸한 웃음으로 결말을 채우는 게 이 영화가 지닌 매력이다.

화질을 일부러 조악하게 만들었다. 이는 주인공 동화의 시선을 대변한다. 근시에도 안경을 쓰지 않아 세상은 온통 뿌옇게 보인다. 사물도 인간도 또렷하게 보지 못하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뚜렷한 시선에 대한 흐릿한 대답이기도 하다.

홍상수의 영화 속 남자는 여전히 철들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극장전’(2005)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영화에서 여자와 하룻밤 자보겠다고 껄떡대던 남자들은 20년이 지나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주저앉는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비로소 결혼 문턱에 다다랐지만, 그 언덕은 넘지 못한다. 32번째 영화에서도 사랑은 결국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걸 홍상수는 말하고 있다. socool@sportsseoul.com